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탑수스 전투 (문단 편집) == 결과 == 탑수스 전투는 원로원파에게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결과를 초래했다. 소 카토는 탑수스 전투의 생존자들을 규합해 카이사르와 맞서려 했으나 병사들이 따라주지 않자 절망에 빠져 자살했다. 또한 [[메텔루스 스키피오]]는 다른 여러 원로원 인사들과 함께 간신히 함대에 다다랐지만 히포 레기우스에서 마우레타니아 용병대장이자 카이사르파 인사인 [[푸블리우스 시티우스]]의 함대와 마주쳤고, 이후 벌어진 [[히포 레기우스 해전]]에서 패하자 목숨을 끊었다. 유바 1세는 누미디아로 귀국했으나 그의 부하들이 더 이상 그를 왕으로 받아들일 의사가 없다는 걸 알게 되자 자살했다. 라비에누스와 폼페이우스의 아들들은 스페인으로 피신해 재기를 도모했으나 이후 벌어진 [[문다 전투]]에서 패배하면서 완전히 몰락한다. 카이사르는 탑수스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뒤 자신에게 사면을 구걸하는 적들을 기꺼이 사면해주고 기원전 46년 9월에 로마에서 갈리아족과 이집트의 승리, 파르나케스와 유바에 대한 승리를 기념하는 개선식을 대대적으로 거행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